Читать книгу 왕들의 행군 - Морган Райс, Morgan Rice - Страница 10
제1장
Оглавление맥길 왕은 과음으로 비틀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눈앞의 방안은 빙빙 돌고 있었으며 무리하게 축제를 즐긴 탓에 고개까지 축 늘어졌다. 상의가 반은 벗겨져 있는 이름 모를 여자가 키득거리며 맥길 왕에게 찰싹 붙어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침대로 이끌었다. 곁을 지키던 시중 두 명이 방문을 닫으며 재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자리를 비켰다.
맥길 왕은 왕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같이 취한 날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더 이상 왕비와는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일이 드물었으며, 왕비는 특히 축제가 있는 날 만찬이 길어지면 따로 마련된 자신의 침실로 바로 향했다. 그녀는 맥길 왕이 얼마나 여색이 짙은지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왕이며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왕국을 통치해왔으니까.
맥길 왕은 여자의 시중을 받으며 밤을 보내고자 마음먹었지만, 방 주변이 빠르게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아 결국 여자를 밀쳐냈다. 더 이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저리 비키거라!” 왕은 명령을 내리며 그녀를 밀어냈다.
놀라서 상처받은 여자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고, 순간 문이 열리며 시중들이 들어와 양쪽에서 여자의 팔을 잡고 밖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저항했지만, 시중들이 그녀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문을 닫자 울부짖던 여자의 소리도 잦아들었다.
맥길 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두통이 잦아들길 바라며 고개를 숙여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렇게 빨리 두통이 찾아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은 뭔가 달랐다. 모든 게 빠르게 변했다. 축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토르가 나타나 모든 걸 망쳐 놓기 전까지 그는 엄선된 고기와 도수가 높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보 같은 꿈 이야기를 언급하며 축제를 망쳤고, 이후에는 겁도 없이 감히 왕의 손에서 술잔을 쳐냈다.
이내 쏟아진 와인을 핥던 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즉사했다. 두려움이 엄습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며 뇌리를 강타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경호를 뚫고, 왕의 술과 음식에 손을 대다니. 독살의 음모에서 간발의 차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몰아쳤다.
때맞춰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던 토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내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접 독을 타지 않은 이상 술잔에 독이 든 사실을 토르가 알리 만무했다. 또는 어떻게든 토르가 독살에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맥길 왕은 토르에게 깊이 내제된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있다는 걸 상기했다. 그 힘은 너무나 신비롭기 때문에 아마도 토르가 사실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꿈에서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쩜 토르가 정말로 왕을 살려낸 것이고 그런 왕은 자신에게 충성을 받힌 한 사람을 지하감옥에 투옥시킨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맥길 왕은 이마에 자리잡은 깊게 패인 두 줄의 주름을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무리하게 과음한 탓에 머리 속이 흐릿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방안은 너무 더웠다. 후덥지근한 여름 밤, 맥길 왕은 오랜 시간 술과 만찬을 즐긴 덕에 온몸에 열이 한껏 달아올랐고 땀이 찼다.
맥길 왕은 외투를 풀고 상의를 벗었다. 받혀 입은 셔츠를 제외하고는 모두 벗어버렸다. 이마와 수염에 난 땀을 닦아낸 뒤, 등을 기내고선 큼지막하고 무거운 부츠를 하나씩 벗어버렸다. 허공에 노출된 발가락을 말아 안쪽으로 구부렸다. 왕은 그 자리에 앉아 크게 심호흡을 하며 균형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과음한 탓에 배가 나와 답답했다. 다리를 크게 들어올려 침대에 몸을 쭉 뻗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한숨을 깊게 내쉬고 더 이상 눈앞이 빙빙 돌지 않길 바라며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봤다.
누가 나를 헤치려 했단 말인가? 또다시 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토르를 자식처럼 아꼈으며, 마음 한 켠으로는 토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짓인지 궁금했다. 무슨 속셈을 품고 그랬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일지 알고 싶었다. 과연 자신을 안전한 것일까? 아르곤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인가?
의문에 대한 답을 알 길이 막막하다고 느껴지자 맥길 왕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의 정신이 조금만 더 맑았다면 누군지 알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왕은 내일 아침 고문들을 불러들여 조사에 착수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맥길 왕이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은 누가 그의 죽음을 바라는가가 아닌, 누가 그의 죽음을 막고 싶어하는 가였다. 왕실은 맥길 왕의 왕좌를 노리는 자들로 득실거렸다. 욕망이 넘치는 장군들, 교묘한 술책을 서슴지 않는 위원들, 권력에 눈이 먼 귀족들과 영주들, 첩자들, 오랜 앙숙들, 맥클라우드 왕국에서 보내온 암살자들, 그리고 와일드의 괴물들까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가까운 곳에 왕권을 탈환하려는 자들이 있을 수 있었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들며 눈꺼풀이 무거워졌지만, 무언가가 그의 주의를 끌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혹시 시중들이 아직 방안에 있는지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맥길 왕은 혼란스러움에 눈을 깜빡였다. 시중들은 항시 절대 왕의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사실, 언제부터 방 안에 혼자 있기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맥길 왕은 주위를 물린 기억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침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었다.
순간 저 멀리 방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왕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벽을 따라 그림자 밖으로 서서히 나오며 횃불에 모습을 드러낸 큰 키의 마른 남자가 보였다. 그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망토에 이어 붙은 모자를 머리 위로 깊숙이 덮고 있었다. 맥길 왕은 눈 앞에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재차 감았다 떴다. 처음에는 그저 횃불에 흔들리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형상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왕의 침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맥길 왕은 어두운 방안에서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사로써의 자질이 탁월한 왕은 허리춤에 손을 뻗어 검이나 혹은 단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옷을 거의 벗어 던진 채였고 아무런 무기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침대 위에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 형상의 움직임은 이제 더욱 빨라져 마치 야행성 뱀과 같은 소름 끼치는 움직임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맥길 왕은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여전히 술이 깨지 않아 그 얼굴을 정확히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머지않아 그는 그 형상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개리스?
개리스 왕자가 예고도 없이 이렇게 늦은 밤에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자 갑작스런 공포가 맥길 왕의 심장을 엄습했다.
“나의 아들아?” 맥길 왕이 말을 건넸다.
맥길 왕은 그의 눈빛에서 살기를 엿봤다. 그것 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침대 밖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 형상의 움직임은 더욱 신속했다. 그는 맥길 왕이 손을 뻗어 자신을 방어할 겨를도 주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횃불에 반사된 금속 칼날이 빠르게, 아주 빠르게 허공을 뚫고 왕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맥길 왕은 깊고 어두운 격통의 외침을 질렀고, 자신의 비명 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전장에 나섰을 때 그곳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런 비명이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전사의 비명이었다.
차가운 금속이 근육을 짓눌러 그의 갈비뼈를 으스러뜨리고 피와 한데 뒤섞여 더욱 깊숙이, 더더욱 깊숙이 몸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끝도 없이 계속 패일 것만 같은, 그간 상상도 해보지 못했건 아찔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숨을 쉬기 힘들어 힘겹게 숨을 크게 헐떡이자 뜨겁고 짠 내나는 피가 그의 입을 가득 채워 더욱 힘겹게 숨을 이어갔다. 맥길 왕은 사력을 다해 고개를 들어 망토에 가리워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짐작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 분명히 아는 자였다. 누군지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분명 왕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꼭 닳아있었다.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혼란으로 머리 속이 뒤엉켰다.
맥길 왕을 사력을 다해 팔을 들어 자신을 누르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왕은 자신에게서 오래된 전사의 기운과 조상의 힘을 느꼈고 자신을 왕으로 이끈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힘이 순간 발휘되는 걸 느꼈다. 모든 사력을 동원해 왕은 한번에 암살자를 밀쳐낼 수 있었다.
암살자는 맥길 왕이 생각했던 것 보다 체격이 마르고 약했다. 그는 울부짖으며 중심을 잃고 뒷걸음질 쳤고 방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맥길 왕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세웠고 손을 뻗어 가슴에서 칼을 뽑아냈다. 뽑힌 칼을 던지자 돌로 된 바닥 위로 찡 하는 소리와 함께 부딪히며 칼자루가 튀어올라 멀리 있는 벽으로 튕겨나갔다.
맥길 왕이 암살자에게 다가가자 얼굴을 가리웠던 망토가 벗겨진 암살자는 뒷걸음질 치며 공포에 질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암살자는 잠시 멈춰 단검을 주운 뒤 빠르게 밖으로 도망쳤다.
맥길 왕은 그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암살자가 너무 빨랐으며 순간 가슴에 밀려들어오는 통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홀로 방에 남은 왕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왕은 무릎을 꿇었다.
체온이 점점 떨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병사들을 부르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봐 라,” 희미한 소리만 울렸다.
위엄 있는 그의 목소리를 뱉어낼 수 있도록 극도의 괴로움을 견디며 맥길 왕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마셨다. 왕의 위엄이 깃든 그 목소리를 내야 했다.
“이봐 라!”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멀리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간 다시 맥길 왕의 눈 앞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술기운이 원인이 아니었다.
맥길 왕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건 갑자기 튀어나와 얼굴에 부딪힌 차가운 돌 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