Читать книгу 왕들의 행군 - Морган Райс, Morgan Rice - Страница 15
제6장
Оглавление격한 돌풍이 개리스 왕자의 얼굴을 강타하자 개리스 왕자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흐릿한 빛과 함께 첫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막 날이 밝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콜비안 협곡에는 왕의 가족, 친구 그리고 가까운 왕족 수백 명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이들 뒤로는 왕의 장례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려는 수천 수만의 인파들을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군중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슬픔은 진심이었다. 맥길 왕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군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개리스 왕자는 직계 가족과 함께 맥길 왕의 사체 주변으로 반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맥길 왕의 사체는 땅속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밧줄로 묶어 지탱해놓은 판자 위에 놓여있었고 그 밑으로는 크고 깊게 판 무덤 자리가 있었다. 장례식에만 갖춰 입는 짙은 다홍빛 망토를 걸친 아르곤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망토를 눌러써 얼굴이 가리워진 아르곤은 묘사할 수 없는 표정으로 왕을 내려다봤다. 개리스 왕자는 아르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그의 표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아르곤은 개리스 왕자가 맥길 왕을 살해한 걸 알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모두에게 이를 알릴 것인가, 또는 운명의 흐름을 그저 지켜볼 것인가?
개리스 왕자에겐 불행하게도, 눈에 가시 같은 토르의 결백이 밝혀졌다. 토르가 지하 감옥에 있는 동안 왕을 암살했다는 건 명백하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맥길 왕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토르의 무죄를 입증해줬다. 이 모든 것이 개리스 왕자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 사건을 진상을 명명백백히 파헤치기 위해 이미 진상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개리스 왕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제 곧 땅속에 묻힐 아버지의 사체를 보며 요동치는 심장을 느꼈다. 그도 함께 묻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범인이 펄스로 좁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개리스 왕자는 펄스와 함께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게 뻔했다. 왕자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게끔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개리스 왕자는 혹시 주변의 인물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는 편집증 환자처럼 주변의 시선을 살펴 그 누구도 자신을 주시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왕자의 주변에는 리스 왕자와 고드프리 왕자, 캔드릭 왕자 그리고 그웬돌린 공주와 왕비가 서 있었다. 왕비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드리워 있었다. 왕비는 분열증세를 보였다. 실제로 맥길 왕의 사망 이후부터 왕비는 말문이 막혀버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개리스 왕자가 듣기로는, 왕비가 왕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마비 증상이 왔다고 했다. 왕비의 한쪽 얼굴은 굳어버렸고 무언가를 말할 때는 말이 느릿느릿했다.
개리스 왕자는 왕비 뒤로 줄지어 선 왕의 자문위원단들의 표정을 주시했다. 앞으로는 총 사령 고문관인 브롬과 왕의 부대 총 책임자인 콜크 사령관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수도 없이 많은 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슬픈 표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개리스 왕자는 이들의 이면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자문단과 고문들, 그리고 사령관들과 모든 귀족 및 영주들 모두가 왕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는 이들의 얼굴에서 야심을 포착했다. 권력을 향한 탐욕. 모두가 왕의 사체를 바라보며 다음 왕좌에 앉게 될 인물이 누가 되야 할지를 계산하는 듯 했다.
그것이야 말로 개리스 왕자가 궁금한 것이었다. 이렇게 혼란을 이룬 암살의 여파는 무엇일까? 만약 이번 일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죄를 덮어씌운다면, 개리스 왕자의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왕좌에 앉을 수 있게 된다. 어찌됐든 그는 적자에 장자였다. 맥길 왕이 그웬돌린 공주에게 승계를 하겠다고 선언하긴 했으나, 당시 형제들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왕은 이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개리스 왕자는 자문위원단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법이라는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공식 표명 없이 그웬돌린 공주가 왕좌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왕좌의 기회는 다시 개리스 왕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리스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겠다 수락만 한다면 그가 바로 왕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법이었다.
그의 형제들은 분명 그에게 맞설 것이다. 다른 왕자들은 맥길 왕과의 회담을 기억하며 그웬돌린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캔드릭 왕자가 왕권을 욕심 낼 일은 만무했다. 그러기엔 그의 심성이 너무 착했다. 고드프리 왕자는 왕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리스 왕자는 아직 어렸다. 개리스 왕자를 위협할 유일한 인물은 바로 그웬돌린 공주였다. 그럼에도 개리스 왕자는 낙관적이었다. 자문단이 십대 계집아이를 링 대륙을 통치할 왕으로 모실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왕의 공식 표명이 없었기 때문에 자문단은 이를 핑계로 공주에게 왕위를 허락하지 않아도 될 완벽한 이유가 있었다.
개리스 왕자의 심중 속에 있는 진정한 위협은 바로 캔드릭 왕자였다. 어찌됐든, 개리스 왕자 자신은 모두에게 미움을 사고 있는 반면, 캔드릭 왕자는 자문단과 기사들 모두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자문단이 얼마든지 왕권을 캔드릭 왕자에게 넘길 확률이 컸다. 개리스 왕자가 왕위에 빨리 오를수록, 왕권을 이용해 좀더 빨리 캔드릭 왕자를 견제할 수 있었다.
개리스 왕자의 손에 무언가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보니 쥐고 있던 밧줄이 움직이며 왕자의 손바닥을 쓸고 있었다. 맥길 왕의 관을 내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개리스 왕자와 함께 각자 밧줄을 쥐고 있던 왕자들이 서서히 줄을 풀어 관을 내리고 있었다. 개리스 왕자 쪽으로 관이 기울어졌다. 개리스 왕자가 미처 줄을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이었다. 개리스 왕자는 다른 손을 뻗어 줄을 풀며 수평을 맞췄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의 마지막 길 앞에서도 그는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저 멀리 궁에서 종소리가 울려오자 아르곤이 앞으로 나와 손바닥을 높이 들었다.
“잇소 오미너스 도미 코 레세피아…”
수천 년 전 개리스 왕자의 조상이었던 고대 링 대륙의 왕족이 사용하던 왕족의 언어, 자취를 감춘 링 대륙의 언어였다. 개리스 왕자의 개인 교사는 개리스 왕자가 어렸을 때 이 언어를 지도했다. 그리고 이 언어야말로 왕권 승계를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언어였다.
아르곤이 갑자기 멈춰 고개를 들고 개리스 왕자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아르곤의 반투명한 눈동자가 마치 개리스 왕자를 태우는 것 같은 느낌에 왕자는 등줄기에 한기를 느꼈다. 왕국 전체가 모두 자신을 주시하는 것만 같아 왕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아르곤의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눈치챌까 두려웠다. 아르곤의 시선에서 자신이 암살에 연루됨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곤은 인간의 운명이란 우여곡절에 관여하길 거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르곤은 과연 그렇게 침묵을 지킬 것인가?
“맥길 왕은 훌륭하고 정당한 왕이었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깊은 목소리로 아르곤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맥길 왕은 왕으로서 선대 왕들의 자부심과 존경심을 발휘했고,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풍요와 평화를 왕국에 선물했소. 신의 뜻에 따라 왕은 조기에 생을 마쳤소. 그럼에도 그는 풍부하고 깊은 유산을 남겼소. 이제는 우리가 그 전통을 이을 차례요.”
아르곤은 잠시 침묵했다.
“링 대륙의 서부 왕국은 오랜 세월 이곳을 탐해온 불길한 적들로부터 사방이 둘러 쌓여 있소. 그리고 캐니언 협곡 너머에 자리잡은 에너지 장벽만이 이곳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장치요. 그 너머에는 이 왕국을 붕괴하려는 미개한 생명체들이 숨쉬고 있소. 링 대륙 내에서도 하이랜드의 반대편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가문이 존재하오. 우리는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번영과 평화 속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전은 순간일 뿐이오. “
“왜 신은 우리에게서 가장 선하고 현명하고 공정했던 왕을 데려간 것인가? 왜 그의 운명은 이러한 암살로 마감하게 됐는가? 인간은 모두 운명의 손에 좌우되는 꼭두각시일 뿐이오. 이렇게 모든 이들 위에서 군림하던 왕도 땅 속에 잠들게 됐소. 우리가 고심해야 할 문제는 바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고군분투하느냐가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가요.”
아르곤은 고개를 숙였다. 밧줄을 풀어 관을 내리는 개리스 왕자의 손바닥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관은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았다.
“안돼!” 비통한 외침이 들렸다.
그웬돌린 공주였다. 넋이 나간 공주는 깊게 판 구덩이 속으로 빠지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리스 왕자가 달려 나와 뒤에서 공주를 붙잡았다. 캔드릭 왕자도 나서 공주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개리스 왕자는 공주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주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공주가 아버지와 함께 묻히길 희망한다면 선뜻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랬다,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
토르는 관에서 한 반짝 떨어진 곳에서 맥길 왕의 사체가 땅속으로 묻히는 걸 지켜봤다. 주변의 경관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왕은 자신이 묻힐 장소로 매우 장엄한 곳을 선택했다. 왕국의 가장 높은 절벽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이곳은 장엄한 높이를 자랑하듯 마치 구름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첫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 오르자 구름 빛이 주황, 초록, 노랑,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럼에도 마치 왕국 전체가 통한에 빠진 듯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토르 옆에는 크론이 훌쩍이고 있었다.
새 울음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니 에스토펠레스가 원을 그리듯 하늘을 날며 지켜보고 있었다. 토르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을 실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왕의 가족과 함께 이곳에 서서 자신이 그토록 충성하고 사랑했던 왕이 차가운 땅속으로 묻히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토르는 이제서야 진심으로 자신을 자식처럼 대해준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제 그 아버지 같은 존재가 사라져버렸다. 그 무엇보다 왕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넌 남들과 다르단다. 특별해. 네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때까지, 이 왕국은 절대 평탄하지 못하겠지.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걸까? 나는 정말 무구인가? 내가 어떻게 특별하단 말인가? 폐하께서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단 말인가? 나의 운명이 이 왕국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폐하께서 정신을 잃고 허언을 하신 것일까?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위대한 곳이 있단다. 와일드 너머에, 용의 터전 너머에. 그곳의 드루이드의 터전이지. 그곳에서 네 모친이 왔단다. 넌 반드시 그곳으로 가 답을 얻어야 한다.
폐하께서 어떻게 내 모친을 알고 계실까? 내 모친이 어디에 있는지 폐하께선 어떻게 아시는 걸까? 그리고 내 모친은 어떤 답을 가지고 계시단 말인가? 토르는 항상 자신을 나아준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살아있는다는 말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모친을 찾으러 나서겠다고 결정했다. 답을 얻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왜 자신이 특별한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종 소리가 들리자 맥길 왕의 관이 서서히 땅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토르는 운명이라는 게 어디까지 잔인하게 얽히고 설킬 수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죽음을 예언했는지, 왜 미래를 보는 건지 알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차라리 모르길 바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왕의 승하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무고한 제 3자가 되길 바랬다. 좀 더 많은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앞으로 왕국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왕이 부재한 왕국이었다. 누가 왕위를 승계할 것인가? 모두가 짐작하듯, 개리스 왕자가 왕이 될 것인가? 이 보다 끔찍한 일은 없었다.
토르는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다, 링 대륙 곳곳에서 올라온 귀족들과 영주들의 굳은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토르는 저들이, 끊임 없이 사건이 일어나는 왕국 내에서 세력을 쟁취하고 또 그 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리스 왕자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가 암살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저 표정으로 보아 마치 모두가 범인인 듯 했다. 저 사람들 모두 권력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왕국은 분열될 것인가? 저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힘을 겨룰 것인가? 내 운명은 무엇일까? 왕의 부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왕의 부대가 폐지될까? 병사들은 해체될까? 개리스 왕자가 왕이 된다면 실버들은 반란을 일으킬까?
한편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지금, 다른 사람들이 진정 내 결백을 믿어 줄까? 다시 고향으로 추방당할까?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토르는 지금에 만족했다. 무엇보다 이 곳, 왕의 부대에 머무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길 바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왕국은 무엇보다 단단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맥길 왕의 통치 또한 영원할 것 같았다. 만약 매우 안전하고 견고한 무언가가 이렇게 갑자기 산산조각 나버릴 수 있다면, 그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단 말인가? 더 이상 토르에겐 그 무엇도 영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웬돌린 공주가 땅속에 묻힌 폐하에게 뛰어드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졌다. 리스 왕자가 공주를 붙잡자, 시중들이 깊이 파인 땅에 다시 흙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르곤은 여전히 장례 절차를 치르고 있었다.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며 잠시 첫 태양을 가리웠다. 토르는 따뜻한 여름 날 갑작스럽게 차가운 바람이 스쳐감을 느꼈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 아래를 보니 크론이 토르의 발 밑에서 토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토르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웬 공주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폐하의 죽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공주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녀 옆에 자신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공주가 다시는 토르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걸, 사창가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알려줘야 했다.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웬 공주가 평생 자신을 내치기 전에 오해를 풀 딱 한번의 기회면 족했다.
마지막 흙을 덮고 나니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알아서 배열을 바꿨다. 끝이 없이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 송이의 흑장미를 손에 들고 절벽 너머까지 줄을 지어 순서대로 방금 흙을 덮은 왕의 무덤을 지났다. 토르 또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이미 높이 쌓여있는 장미 더미에 장미 한 송이를 올리며 예를 갖췄다. 크론이 울어댔다.
군중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사방으로 분산됐다. 때마침 토르는 리스의 손을 뿌리치고 저 멀리 어딘가로 정신 없이 뛰쳐나가는 그웬 공주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