Читать книгу 왕들의 행군 - Морган Райс, Morgan Rice - Страница 14
제5장
Оглавление왕의 침실로 향하는 뒷길을 헤치며 토르는 리스 왕자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 뒤로는 크론이 함께 했다. 리스 왕자는 토르와 크론을 석조 벽면에 몰래 만들어 놓은 비밀 문으로 안내했다. 왕자는 횃불을 들고 좁은 공강의 통로로 인도했다.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난 궁궐의 내부를 걸어 들어갔다. 좁은 석조 계단을 오르니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방향을 틀자 이번엔 다른 계단이 보였다. 토르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구조에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통로는 수백 년 전에 왕실 내부에 비밀스럽게 만들어졌어,” 리스 왕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길을 안내하며 토르에게 설명했다. 길을 따라 올라가느라 왕자의 숨이 거칠었다. “이 길은 내 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였던 3대 맥길 왕께서 만드신 거야. 성이 포위당한 뒤에 탈출구 용도로 만들어놓으신 거지. 아이러니하게도 이걸 만든 뒤 맥길 왕가의 왕실은 한번도 포위당한 적이 없었어. 그래서 이 통로는 수백 년 동안 사용된 적이 없었지. 여길 막아놨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우연히 발견했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이 통로를 이용해 왕실 내부를 돌아다니는 게 좋아. 그웬 누나와 고드프리 형과 나는 어렸을 때 여기서 숨바꼭질을 했었어. 캔드릭 형은 숨바꼭질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고 개리스 형은 우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 횃불은 사용 금지였어. 그게 우리의 규칙이었지. 칠흑 같은 암흑만이 있었어. 그땐 그게 참 무서워 겁을 냈었지.”
토르는 리스 왕자가 안내하는 놀라울 정도로 기괴한 길을 열심히 따라 갔다. 리스 왕자는 확실히 통로의 모든 길을 훤히 꿰뚫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떻게 이 길을 모두 기억하시죠?” 토르가 놀라 물었다.
“어렸을 때 왕실에서 외롭게 자라서,”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다 나이가 많았고, 또 왕의 부대에 합류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할게 없을 때 난 내 스스로에게 이 곳의 구석구석을 확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었지.”
두 사람은 또다시 방향을 틀었다. 석조 계단을 세 걸음 내려가 좁은 벽으로 방향을 바꾼 뒤 다시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내 리스 왕자는 먼지로 가득한 묵직한 떡갈나무로 만든 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왕자는 한쪽 귀를 문으로 바짝 붙이고는 귀를 기울였다. 토르는 왕자 옆으로 다가갔다.
“이게 무슨 문이죠?” 토르가 물었다.
“쉿,” 리스 왕자가 주의를 줬다.
토르는 질문을 멈추고 한쪽 귀를 문에 대어 주의를 기울였다. 크론이 토르 옆에 앉아 토르를 바라봤다.
“이건 아버지 침실로 향하는 뒷문이야,” 리스 왕자가 속삭였다. “지금 아버지 곁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토르는 방안의 소리를 들었다. 문 안쪽에서 음성이 들렸다.
“사람들이 가득 있는 것 같아,” 왕자가 말했다.
리스 왕자는 고개를 돌려 토르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넌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게 될 거야. 폐하의 사령관들이 모두 저 안에 있고, 자문단과 고문관 그리고 내 가족들이 저 안에 있어. 분명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 살인자로 여기며 경계할거야. 잔뜩 성이 난 군중들에게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만약 폐하께서 여전히 네가 독살을 꾸몄다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넌 끝이야. 이래도 정말로 이걸 해야겠어?”
토르는 크게 침을 삼켰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자 목이 바짝 타 들어갔다. 토르가 선택할 수 있는 쉬운 길은, 다시 이 길을 돌아가 성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럼 왕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은신하며 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토르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가 아마도 그때 보았던 형편없을 인간들과 지하감옥에서 평생을 살게 되거나 또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
토르는 숨을 크게 쉬고 결정을 내렸다. 물러설 수 없었다. 당당히 악마의 장난을 마주해야 했다.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말을 꺼내기에 겁이 났다. 입을 열면 마음이 바뀔 것 같았다.
리스 왕자도 동의하는 표정으로 토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는 철문 고리에 힘을 주며 어깨로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자 시야에 밝게 빛나는 횃불이 들어왔다. 토르가 서 있는 곳은 왕의 개인 침실 정 중앙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리스 왕자와 크론이 그 옆을 지켰다.
누워있는 맥길 왕 곁으로 적어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몇 명은 왕의 곁에 서 있었고 나머지는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자문위원단들과 사령관들이 아르곤, 왕비, 캔드릭 왕자, 고드프리 왕자 그리고 그웬돌린 공주 곁에 함께 서 있었다. 왕의 죽음을 지키고 있었다. 토르는 맥길 왕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난데없이 등장한 셈이었다.
방안의 분위기는 어두웠고 모든 이들의 표정은 침울했다. 맥길 왕은 베개에 기대 누워 있었고 토르는 맥길 왕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일제히 모든 시선이 난데없이 나타난 토르와 리스 왕자에게 향했다. 방 한가운데서 자신과 리스 왕자가 비밀의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났으니 침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명 적잖이 당황하고 놀랠 거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범인이야!” 누군가가 증오에 섞인 말투로 토르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자가 감히 폐하를 독살하려 했어!”
사방에서 병사들이 토르를 향해 다가왔다. 토르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분노에 사로잡힌 군중들을 마주해야 했다. 토르는 왕에게 해명을 해야 했다. 병사들이 재빨리 손을 뻗어 토르를 붙잡으러 일제히 달려들었다. 크론이 토르의 곁을 지키며 병사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으르렁거렸다.
그 자리에 서 있던 토르는 순간적으로 몸 속의 에너지가 발현돼 온몸에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토르는 본의 아니게 한 손을 올려 자신의 에너지를 병사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마치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토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 불명의 에너지가 병사들이 토르에게 달려들 수 없도록 막아주고 있었다.
“감히 네가 어찌 이곳에 나타나 마법을 부리는 것이냐!” 총 사령 고문관인 브롬이 검을 뽑아 들며 고함쳤다. “폐하를 음해하려던 시도가 한번으론 부족했단 말이냐?”
총 사령 고문관이 검을 들고 토르에게 다가가자 토르는 전에 없던 강력한 기운을 느꼈다. 토르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총 사령 고문관이 지닌 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의 모양과 금속재질을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검과 하나가 됨을 느꼈다. 토르는 마음속으로 검이 멈추길 염원했다.
총 사령 고문관은 놀란 눈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아르곤!” 총 사령관은 소리쳤다. “이 마법을 멈춰주시오! 이 소년을 멈춰주시오!”
아르곤은 앞으로 나서 천천히 그의 망토를 눌러 썼다. 그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토르를 주시했다.
“저 아이를 막을 이유가 없소,” 아르곤이 대답했다. “저 아이는 누굴 헤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제 정신이오? 저 아이는 폐하를 죽일 뻔 했소!”
“그건 당신 생각이오,” 아르곤이 대답했다. “내가 보는 건 다르오.”
“그를 내버려 두어라,” 어디선가 엄중하고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맥길 왕이 몸을 일으키자 모두가 시선을 왕에게 돌렸다. 왕은 기력이 많이 쇠해 보였다.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힘에 겨웠다.
“저 아이를 보고 싶구나. 저 아이는 나를 찌르지 않았다. 난 그자의 얼굴을 봤어, 저 아이가 아니야. 토르는 결백하다.”
서서히 사람들의 경계가 풀어지기 시작했고 토르 또한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병사들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병사들은 마치 토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 듯 토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들의 검을 칼집에 다시 집어 넣었다.
“아이를 보고 싶다,” 맥길 왕이 명령을 내렸다. “단 둘이 보겠다. 모두 물러나거라.”
“폐하,” 총 사령관 브롬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래도 안전하겠습니까? 저 아이와 단둘이요?”
“토르를 내버려두거라,” 왕이 다시 한번 명령했다. “이제 모두 물러가거라. 전부 다. 내 가족들도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방안에는 깊은 적막이 흘렀다. 토르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인지 마치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가족들을 포함해 차례대로 한 사람씩 방에서 물러났다. 크론 또한 리스 왕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왕의 침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방문이 닫히고 토르와 맥길 왕만이 적막 속에 남겨졌다. 토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창백한 안색의 맥길 왕이 고통을 인내하며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자신의 일부가 저 침상에서 죽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무엇보다 맥길 왕이 쾌차하길 바랬다.
“이리 오거라, 토르,” 맥길 왕이 쉬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힘없이 말했다.
토르는 몸을 숙이고 재빨리 왕의 곁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맥길 왕은 힘없이 손목을 내밀었고, 토르는 왕의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토르는 고개를 들어 맥길 왕의 입가에 희미하게 번진 미소를 봤다. 순간 토르의 빰에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스스로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 토르가 참지 못하고 서두르며 입을 열었다. “제발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폐하를 독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꿈에서 본 것입니다. 저도 알지 못하는 힘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저 폐하께 알려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제발 부디 저를 믿어주십시오.”
맥길 왕은 손바닥을 들어올렸고 토르는 말을 멈췄다.
“내가 오해했구나,” 왕이 대답했다. “다른 이의 칼에 찔린 뒤 네가 범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넌 그저 날 구하려 했던 것이었구나. 날 용서해다오. 넌 충심을 다했어. 아마도 궁궐 안의 유일한 충심일 수도 있겠지.”
“제가 틀렸기를 바랬습니다,” 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안전하시길 바랬습니다. 제 꿈이 단지 환영이기만을 바랬고 폐하께서 절대 암살당하시는 일은 없길 바랬습니다. 아마도 제가 틀린 것일 겁니다. 폐하께서는 꼭 이겨내실 겁니다.”
맥길 왕은 손을 저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왕이 대답했다.
토르는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짐작했다.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아시는지요, 폐하?” 토르는 꿈을 꿨던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궁금했던 질문을 내뱉었다. 대체 누가 왕을 없애고 싶어하는지, 또는 왜 왕을 제거하려고 하는지 토르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맥길 왕은 천장을 바라보고 간신히 눈을 깜빡였다.
“얼굴을 보았다. 아는 얼굴이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구나.”
왕은 토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젠 다 소용 없다. 가야 할 시간이구나. 그자의 손에 죽건, 또는 다른 누구였건, 결과는 어차피 같단다. 지금 중요한 건,” 왕은 이 말과 함께 손을 뻗어 토르의 팔목을 잡았다. 그 힘이 너무 세 토르는 크게 놀랐다. “내가 떠난 뒤에 벌어질 일이란다. 이곳은 왕이 없는 왕국이 될 거야.”
맥길 왕은 토르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강렬한 눈빛으로 토르를 바라봤다. 토르는 왕이 건네는 말의 의미를, 또는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토르는 묻고 싶었지만 맥길 왕이 얼마나 힘겹게 숨을 고르며 의사를 전달하는지 알고 있기에 질문을 참고 계속 경청했다.
“아르곤이 맞았다,” 맥길 왕은 손목의 힘을 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운명은 내가 타고난 운명보다 위대해.”
맥길 왕의 말에 토르는 감전된 듯한 충격을 느꼈다. 토르의 운명? 왕보다 위대한 운명? 맥길 왕이 직접 아르곤과 자신에 대해 상의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왕보다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실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맥길 왕이 망상에 빠진 것일까?
“난 널 선택했다. 널 내 아들로 삼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이유가 뭔질 알겠느냐?”
그 이유가 절실히 궁금한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왜 내가 널 이곳에 남겼는지 모르겠느냐, 너만 홀로, 나의 마지막 순간에?”
“폐하, 송구스럽습니다,” 토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두 눈에 서서히 힘이 풀리며 맥길 왕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위대한 곳이 있단다. 와일드 너머에, 용의 터전 너머에. 그곳의 드루이드의 터전이지. 그곳에서 네 모친이 왔단다. 넌 반드시 그곳으로 가 답을 얻어야 한다.”
맥길 왕은 눈을 크게 뜨고 강렬하게 토르를 바라봤다. 토르는 차마 헤아릴 수 없는 눈빛이었다.
“이 왕국은 네 손에 달려있다,” 맥길 왕이 말을 이었다. “넌 남들과 다르단다. 특별해. 네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때까지, 이 왕국은 절대 평탄하지 못하겠지.”
눈을 감은 맥길 왕의 숨소리가 더없이 희미했다. 한숨 한숨이 순탄치 않았다. 토르의 손목을 쥔 힘이 천천히 힘을 잃어갔다. 토르는 눈물을 흘렸다. 왕이 건넨 말을 이해하고자 할수록 토르의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걸 까?
왕은 무언가 힘없이 속삭였다. 그러나 쉽게 들리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토르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맥길 왕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
맥길 왕은 마지막으로 최후의 기력을 발휘해 고개를 들었다.
“내 원수를 갚거라.”
이 말과 함께 맥길 왕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잠시 동안 누워 있었고, 이후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떨군 뒤 그대로 굳어있었다.
죽음이 드리웠다.
“안돼!” 토르는 통곡했다.
토르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병사들에게까지 들려,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방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그의 주변으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렴풋이 성의 종소리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울리는 걸 들었다. 울려대는 종 소리에 맞춰 관자놀이 부위가 지끈거리며 요동쳤다. 그리고 잠시 뒤 방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토르는 돌 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