Читать книгу 용의 숙명 - Морган Райс, Morgan Rice - Страница 15

제6장

Оглавление

개리스 왕은 서둘러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검을 들어올리지 못한 스스로에게 놀랐으며 앞으로의 결과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지금껏 7대의 선대 맥길 왕들이 들어올리지 못했던 운명의 검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들어올리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왜 스스로를 선대 왕들보다 우월하리라 생각했던 것인가? 왜 스스로는 다를 것이라 여겼던 것인가?

그는 짐작했어야 했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왜 스스로를 몰아부친 것인가?

이제 그가 선택 받은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인이 알게 됐다. 이제 그의 통치는 이에 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마도 이로 인해 자신이 아버지 암살의 배후라는 확신을 더욱 심어준 셈이 된 것일 수도 있다. 개리스 왕은 이미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선이 달라진 걸 느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여긴 듯 했으며. 모두의 시선이 이미 다음 왕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 했다.

더욱 비참한 건 바로,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은 것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자신의 운명을 확신했다.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고, 링 대륙을 통치하며, 운명의 검을 들어올리는 선택 받은 자일 거라 믿었다. 이러한 그의 자만은 이제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이제 그는 모든 것에 확신을 잃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검을 들어올리기 전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검을 들지 못한 건 아버지의 복수인 것일까?

“브라보,” 어디선가 누군가가 냉소적으로 말을 건넸다.

혼자였다 생각했던 개리스 왕은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한번에 알아챘다. 지난 수 년간 익숙하게 들었던 그가 경멸하는 인물, 부인의 목소리였다.

헬레나.

그녀는 집무실 한쪽 구석에서 아편이 담긴 파이프를 피우며 개리스 왕을 주시했다. 아편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인 뒤 숨을 참고 다시 연기를 천천히 뱉어냈다. 헬레나 왕비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개리스 왕은 그녀가 아편 파이프를 지나치게 많아 피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것이오?” 개리스 왕이 물었다.

“여기 우리 집무실이잖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여기선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요. 난 당신 부인이자 왕비이니. 잊지 마요. 나도 당신처럼 이 왕국을 지배하는 인물이니까. 그리고 오늘 당신의 커다란 패배로 말미암아, 지배 라는 말은 아무나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개리스 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헬레나 왕비는 언제나 개리스 왕이 가장 힘들고 상황이 부적절한 시기에 그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는 이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자신의 부인을 혐오했다. 둘의 결혼에 동의했던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가?” 개리스 왕이 몸을 돌려 침을 뱉고는 분노하듯 그녀에게 다가섰다. “내가 왕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본데, 아가씨, 네가 내 부인이든 아니든 왕국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난 널 구금시킬 수 있어.”

헬레나 왕비는 조롱 섞인 콧방귀를 끼며 개리스 왕을 비웃었다.

“그럼 어떻게 될까?” 헬레나 왕비가 반문했다. “네 백성들이 너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까? 아마도, 매우 그렇겠지. 그건 개리스란 인간이 계획한 일에 어긋나지. 그 누구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중시하는 남자에게는.”

개리스 왕은 헬레나 왕비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언제나 자신을 꿰뚫어본다는 생각에 마음 속 깊이 심기가 불편했다. 개리스 왕은 그녀의 협박에 수긍했고 그녀와 말다툼을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그런 이유로 개리스 왕은 그곳에 서서 조용히 화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주먹을 움켜 쥐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오?” 개리스 왕은 분노를 애써 누르며 천천히 말을 걸었다. “당신은 원하는 게 있을 때만 날 찾지 않소.”

그녀는 짧게 조롱 섞인 웃음을 날렸다.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직접 가져요. 당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대신 이야기 좀 하러 왔죠. 당신의 왕국 전체가 운명의 검을 들어올리지 못한 당신의 모습을 봤어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 라니?” 개리스 왕은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해 반문했다.

“이제 당신의 백성들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잖아요. 당신이 패배자라는 사실이요. 당신이 선택 받은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요. 축하해요. 이제 이건 공식 사실이 됐네요.”

개리스 왕은 인상을 가득 썼다.

“내 아버지도 운명의 검을 들어올리진 못했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국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건 아니었잖소.”

“그렇지만 왕권에는 영향을 받았죠,” 헬레나 왕비가 조롱하며 맞받아쳤다. “매 순간 순간마다요.”

“그렇게 내 무능력이 싫으면,” 개리스 왕은 씩씩대며 말했다. “이 곳을 왜 떠나지 않소? 날 떠나시오! 우습지도 않은 이 결혼을 끝내시오. 난 이제 왕이오. 그 누구도 더 이상 필요 없소.”

“그 말을 꺼내줘서 기쁘네요,” 헬레나 왕비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제가 이곳에 온 이유에요. 당신이 공식적으로 우리의 결혼생활을 끝내줬으면 해요. 이혼해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요. 진짜 남자요. 사실, 당신의 기사 중 한 명이에요. 그는 전사에요. 우린 서로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지금껏 만난 사람들과는 달라요. 더 이상 이 관계를 숨기지 않을 수 있도록, 이혼해줘요. 제 사랑을 공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와 결혼하고 싶어요.”

개리스 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멍하니 왕비를 바라봤다. 심장에 단검이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왕비는 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인가? 왜 그 많은 순간 중 지금인가? 너무 버거웠다. 쓰러져 있는 자신에게 세상이 시련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리스 왕이 자신이 왕비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왕비가 실제로 이혼을 거론했을 때 무언가를 느꼈다. 분노가 치밀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의 이혼을 원치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약 개리스 왕이 먼저 이혼을 거론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왕비가 거론했기에,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는 왕비가 손쉽게 원하는 걸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이혼이 왕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다. 이혼한 왕이라는 사실에 수 많은 질문이 쏟아질 것이 뻔했다. 더불어 개리스 왕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왕비가 사랑한다는 전사에게 질투가 났다. 또한 자신의 면전에서 남편으로서 부족한 남성성을 지적하는 왕비에게 분노했다. 그는 앙갚음을 해주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혼은 못해주오,” 개리스 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나에게 묶어있소. 영원히 내 부인으로 살아야 하오. 당신에게 절대 자유란 없을 것이오. 또한 내가 만약에라도 그 전사를 보게 된다면, 그를 고문하고 처형할 것이오.”

헬레나 왕비는 개리스 왕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난 당신 부인이 아니야! 당신 또한 내 남편이 아니지. 당신은 남자가 아니야. 이 결혼은 불성실한 결합일 뿐이야. 처음부터 그래왔어. 권력을 위해 계획된 협정일 뿐이야. 이 모든 것이 역겨워. 늘 그랬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난 진정한 결혼생활을 할 기회를 박탈당했지.”

왕비가 숨을 골랐지만 그녀의 분노는 더해졌다.

“이혼을 해 줘야 할거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어떤 남자인지 왕국 전체에 고할 테니까. 당신이 결정해.”

이 말을 남기고 헬레나 왕비는 뒤돌아 걸어나갔다. 열려있는 방문을 나서며 다시 문을 닫는 수고도 잊었다.

개리스 왕은 석조 건물에 홀로 남아 왕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온 몸에 찬 기운이 들었음에도 차마 몸을 떨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붙잡을 수 있는 안정적인 것이 있을까?

개리스 왕은 열려있는 방문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그는 이내 누군가 이곳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펄스가 나타나 개리스 왕은 헬레나 왕비와의 대화를 충분히 심사숙고 할 시간을 놓쳤다. 그녀의 협박을 제대로 가늠해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펄스는 특유의 방정맞은 걸음걸이 대신 죄지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집무실에 들어섰다.

“개리스?” 펄스는 확신 없는 어조로 말을 건넸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주시하는 펄스를 보자 개리스 왕은 그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반드시 속상해야 한다고 개리스 왕은 생각했다. 어찌됐든, 운명의 검을 들라고 설득한 것도 펄스였고 자신을 능력 이상의 사람이라 헛바람을 넣은 것도 펄스였다. 펄스의 속삭임이 아니었다면, 누가 알았을까? 개리스 왕은 운명의 검을 들 시도조차 안 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개리스 왕은 분개하며 펄스에게 향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마땅한 대상을 찾았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은 펄스였다. 이 모든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이 바보 같은 펄스였다. 이제 개리스 왕은 또다시 선택 받지 못한 맥길 왕가의 왕일 뿐이었다.

“널 증오해,” 개리스 왕이 분개했다. “네 약속들은 지금 어떻게 됐지? 내가 운명의 검을 들어올릴 거라는 네 확신은?”

펄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펄스가 대답했다. “제가 틀렸습니다.”

“넌 많은 걸 틀리지,” 개리스 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실, 생각하면 할수록 펄스는 모든 걸 망쳐놨다. 실제로 펄스만 아니었다면, 자신의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있었을 것이다. 그럼 개리스 왕은 이 엉망인 상황 속에 놓여있을 필요도 없었다. 왕권의 무게 또한 감당할 필요가 없었고 이 모든 것이 잘못 될 리가 없었다. 개리스 왕은 단순했던 과거가 그리웠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던, 자신이 왕이 아닌 시절이 사무쳤다. 그 모든걸 다 되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던 그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을 원망할 펄스만이 눈 앞에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개리스 왕은 펄스를 압박했다.

펄스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저는 소문을…시중들이…떠드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폐하의 누이와 형제 분이 여기저기 파헤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제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두 사람은 하인들이 일하는 곳에서 목격됐습니다. 살인 무기를 찾으려고 오물 통을 수색했답니다. 제가 폐하의 아버지를 암살할 때 사용한 단검이요.”

펄스의 한마디 한마디에 개리스 왕의 몸이 굳어갔다. 공포와 두려움이 온 몸을 마비시켰다. 이 보다 더 엉망인 하루가 있을 수 있을까?

개리스 왕은 헛기침을 했다.

“그들이 뭘 찾았지?” 개리스 왕은 바짝 마른 입으로 겨우 말을 뱉었다.

펄스는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폐하.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 분들이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리스 왕은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펄스에게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펄스의 갈팡질팡하는 태도만 아니었다면, 무기를 제대로 처리하기만 했더라면, 개리스 왕이 이러한 상황에 처할 리가 만무했다. 펄스 덕에 개리스 왕은 속수무책이었다.

“난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을 거야,” 개리스 왕이 펄스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호한 표정으로 펄스를 주시했다. “다시는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알아 듣겠나? 이 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왕실 밖으로 널 좌천 보내겠다. 만약 네가 이 성안에 발을 다시 디딘다면, 널 체포할 것이다.”

“당장 떠나!” 개리스 왕이 고함을 질렀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펄스는 뒤돌아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개리스 왕은 다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운명의 검을 생각했다. 스스로 큰 재앙을 초래했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절벽으로 자신을 몰아붙인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추락을 직면하게 될 뿐이었다.

개리스 왕은, 아버지의 집무실 석조 바닥 위 깊게 울리는 침묵 속에 홀로 서서 온 몸을 떨며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생각했다. 이 보다 더 사무치게 외로울 순 없었다. 더 이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왕의 자리인가?

*

개리스 왕은 서둘러 원형의 석조 계단을 올랐다. 성의 가장 높은 난간을 향해 황급히 한 층 한층 올라갔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왕국의 전망과 백성들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공간이 필요했다. 오늘 일어난 모든 악몽 같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는 여전히 이 왕국의 왕이었다.

개리스 왕은 뒤를 따르는 시중들을 물리고 홀로 계단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그러다 중간에 멈춰 몸을 구부리고는 숨을 골랐다. 두 뺨에 그의 눈물이 타고 내렸다. 계속해서 매 순간마다 자신을 꾸짖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당신을 경멸해요!” 그는 허공에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그는 분명 조롱하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비웃음이었다.

개리스 왕은 그 공간을 벗어나야 했다. 그는 쉬지 않고 원형 계단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눈 앞의 문을 박차고 나가자 신성한 여름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그는 깊게 호흡을 들이마신 뒤 한참 동안이나 숨을 참으며 따뜻한 바람과 햇살을 만끽했다. 개리스 왕은 어깨에 걸친, 한때 자신의 아버지가 걸쳤던 망토를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날이 무더웠기에 더 이상 망토를 걸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석조 벽으로 이뤄진 난간의 가장자리로 서둘러 자리를 옮겨 거친 숨을 쉬며 왕국을 내려다봤다. 끝없는 인파가 성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늘 행사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인파였다. 저 수 많은 인파가 모두 자신의 통치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갈 수 있단 말인가?

“왕좌란 재미있는 것이지요,”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개리스 왕이 뒤를 돌아보자 눈 앞에 아르곤이 보였다. 흰색 망토와 후드를 쓰고 지팡이를 든 채 한걸음 뒤에 떨어져있었다. 아르곤은 자신을 바라보는 개리스 왕을 바라봤다. 입가엔 미소가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미소를 찾을 수 없었다. 아르곤의 두 눈은 불처럼 이글거렸고 개리스 왕을 꿰뚫어 보며 그를 한쪽으로 몰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을 너무 많은 것을 목격했다.

개리스 왕은 아르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묻고 싶은 게 끝도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검을 들어올리지 못한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는가?” 개리스 왕이 간절하게 물었다. “자네는 내가 선택 받은 자가 아님을 미리 말해줄 수 있지 않았나. 날 이런 수모로부터 막아줄 수 있었네.”

“왜 그래야 하는지요?” 아르곤이 반문했다.

개리스 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은 왕의 진정한 조언자가 아니군,” 개리스 왕이 말했다. “내 아버지에게는 진정한 충고를 했을 망정, 내겐 그렇지 않구나.”

“아마도 폐하의 선왕께서는 진정한 조언을 누릴 자격을 갖췄던 거겠죠,” 아르곤이 대답했다.

개리스 왕의 분노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아르곤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를 원망했다.

“자네가 내 주변을 맴도는 걸 원치 않는다,” 개리스 왕이 말했다. “왜 선왕께서 자네를 곁에 두었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왕국에서 떠나길 바란다.”

아르곤은 공허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웃음을 터뜨렸다.

“선왕께서 절 곁에 두신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여,” 아르곤이 설명했다. “선왕의 선왕도 아니지요. 저는 이곳에 있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사실, 제가 그분들을 곁에 두었다고 정정해야겠지요.”

순간 아르곤은 개리스 왕 앞으로 바짝 다가가 그의 영혼을 꿰뚫어 보듯 그를 주시했다.

“폐하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르곤이 물었다. “폐하는 이곳에 있을 운명인가요?”

아르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개리스 왕의 신경을 강타했고, 개리스 왕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르곤이 던진 질문이야말로 개리스 왕 스스로가 궁금해했던 것이었다. 개리스 왕은 지금 아르곤이 자신을 위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피로써 대위를 잇는 자는 피로써 지배한다,” 아르곤은 이 말을 남긴 채 뒤돌아 걸어갔다.

“기다리시오!” 개리스 왕이 소리쳤다. 아르곤이 사라지지 않길 바랬다. 그의 답이 필요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개리스 왕은 아르곤이 자신에게 오랜 시간 통치하지 못할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 여겼다. 아르곤이 정말 그런 의미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남긴 건지 확인해야 했다.

개리스 왕은 아르곤을 쫓아 달려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아르곤은 눈 앞에서 사라졌다.

개리스 왕은 주변을 둘러봤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한 웃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아르곤!” 개리스 왕지 다시 외쳤다.

개리스 왕은 다시 몸을 돌려 하늘 위를 바라봤다.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그는 사력을 다해 외쳤다:

“아르곤!”

용의 숙명

Подняться навер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