Читать книгу 용의 숙명 - Морган Райс, Morgan Rice - Страница 18
제9장
Оглавление그웬돌린 공주는 활짝 펼쳐진 들판 위를 뛰었다. 공주의 곁에는 그녀의 아버지, 맥길 왕이 함께였다. 어린 시절의 공주였다. 공주는 10살쯤 되어 보였고, 그만큼 맥길 왕도 젊어 보였다. 맥길 왕의 턱수염이 짧았고 흰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젊어 보였고 피부에는 주름 없이 광채가 났다. 맥길 왕은 근심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웬돌린 공주의 손을 잡고 공주와 함께 벌판을 뛰며 거침없이 웃었다. 공주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공주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맥길 왕은 그웬돌린 공주를 번쩍 들고 그의 어깨에 공주를 앉힌 뒤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았다. 맥길 왕은 더욱 크게 웃었고 그웬돌린 공주는 정신 없이 깔깔거렸다. 아버지의 어깨에 앉은 공주는 안락하고 편안했다. 이 순간이 계속되어 멈추지 않길 바랬다.
그러나 맥길 왕이 그웬 공주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은 사라지고 땅거미가 내려 앉았다. 그웬 공주의 두 발이 바닥에 닿자, 들판의 꽃들이 자취를 감췄고 공주의 발목까지 진흙이 덮였다. 몇 발자국 옆에 있던 맥길 왕은 하늘을 정면으로 보며 진흙 위에 곧게 누웠다. 방금 전과 달리 아주 많이 늙은 모습이었고 그렇게 진흙 바닥에 고정되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누워있음에도 맥길 왕의 머리 위에 놓인 왕관은 빛을 반짝였다.
“그웬돌린,” 맥길 왕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나의 딸. 나를 도와다오.”
맥길 왕은 진흙더미 속에서 한 손을 위로 뻗고 절실히 공주를 찾았다.
공주는 황급히 아버지를 돕기 위해 서둘렀다. 아버지에게 달려가 손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발 밑을 보니 진흙 속에서 공주의 발이 꼼짝 없이 고정됐고 진흙은 순식간에 말라붙어 갈라졌다. 공주는 헤어나오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쳤다.
그웬 공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떠보니 왕실의 난간에서 왕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가 달랐다. 왕국은 예전과 달리 화려함과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질서한 묘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랑했던 왕국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제는 저 끝까지 묘지일 뿐이었다.
공주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본 공주는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암살자가 다가오는 모습에 그대로 멈춰 버렸다. 암살자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후드를 벗어 던졌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한쪽 눈이 없었고 이리저리 난 눈가의 흉터가 인상 깊었다. 그는 으르렁 거리며 한 손을 들어 번쩍이는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단검의 칼끝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암살자의 움직임이 너무나 민첩해 공주는 제대로 숨지도 못했다. 공주는 이제 곧 죽게 되리란 생각에 몸을 잔뜩 웅크렸고 암살자는 있는 힘껏 단검을 내리 꽂았다.
그러나 순간 암살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공주가 눈을 뜨고 위를 바라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맥길 왕은 시체의 형태로 나타나 공중에서 암살자의 팔목을 쥐어 잡고 있었다. 맥길 왕이 잡고 있던 손을 비틀어 끝내 암살자는 단검을 떨어뜨렸고, 맥길 왕은 암살자를 어깨에 들춰 메고 난간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웬 공주는 허공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암살자의 절규를 들었다.
맥길 왕은 공주에게 몸을 돌려 공주를 지그시 바라봤다. 한 손으로는 부드럽고 단단하게 공주의 어깨를 짚고 있었지만 맥길 왕의 표정이 단호했다.
“네가 여기 있으면 위험하단다,” 맥길 왕이 경고했다. “여긴 안전하지 않아!” 맥길 왕이 고함쳤다. 공주의 어깨를 짚고 있던 맥길 왕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공주는 아픔을 호소했다.
그웬 공주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공주는 침대에서 허리를 세우고 상반신을 일으켰고 암살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침실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나 침실 안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깊은 적막이 새벽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주는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 공주는 잠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 안을 걸었다. 서둘러 작은 석조 대야로 걸음을 옮겨 계속해서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그리고는 벽에 몸을 기댔다. 공주는 그렇게 더운 여름 새벽 날, 차가운 석조 바닥에 맨발을 디디고 발 끝에서 전해지는 시원함을 온전히 느꼈다. 공주는 애써 정신을 추슬렀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꿈이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의 경고가 분명했다. 메시지였다. 공주는 순간 지금 당장 왕실을 떠나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대 다시는 돌아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실을 떠나는 건 그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주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러나 공주가 눈을 감을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경고를 보내오는 게 분명했다. 혼란스러운 꿈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공주는 창 밖으로 첫 번째 태양의 일출을 바라봤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맑게 해줄 유일한 장소, 왕의 강을 떠올렸다. 공주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
그웬돌린 공주는 얼음처럼 차가운 왕의 강물 속에 숨을 참고 몸을 구부려 계속해서 얼굴을 적셨다. 공주는 어린 시절 발견한 바위 사이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천연 풀장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상부에 위치한 산 속의 샘에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공주는 물 속으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차가운 강물의 물살이 공주의 머리칼을 흔들며 냉기를 뼈 속까지 전달했다. 차디찬 강물이 그녀의 알몸을 정화해주는 느낌이었다.
이 외딴 곳을 발견한 건 오래 전이었다. 높은 산 속 나무 사이에 가리워진 이곳은 작은 고원으로, 강물의 물살이 정체되어 깊고 맑은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의 머리 위로는 강물이 작은 폭포처럼 쏟아졌고 그렇게 쏟아진 강물은 계속해서 흐르다 이 고원에서 고이며 약한 물살을 일으켰다. 호수는 깊었지만 호수를 담고 있는 바위는 부드러웠다. 쉽게 노출되지 않는 아늑한 장소였기에 걱정 없이 알몸으로 몸을 담갔다. 공주는 여름이 되면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 이곳을 찾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특히 오늘같이 꿈자리가 사나운 날에는 더욱 서둘러 이곳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꿈이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인지 또는 경고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공주의 어지러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또는 정말 대비를 하도록 찬스를 주려는 건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웬돌린 공주는 따뜻한 여름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주변에서 나무 위의 새들이 짹짹거렸다. 공주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바위에 기댔다. 얼굴을 제외한 몸은 여전히 물 속에 담그고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공주는 양 손으로 얼굴에 물을 적셨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길고 긴 머리카락을 쓸었다. 강물의 표면 위로 하늘이 반사됐다. 두 번째 태양이 이미 하늘 위로 솟고 있었고 강물 위로 뻗은 나무들 사이로 공주의 얼굴이 비쳤다. 흔들리는 강물의 표면 위로 공주의 두 눈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공주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느꼈다. 공주는 고개를 돌려 다시 꿈에 대해 생각했다.
공주는 아버지의 암살자가 있는, 첩자들이 가득한, 음모가 들끓는 왕실에 머무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리스 오빠가 왕으로 있는 왕실이었다. 개리스 오빠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늘 앙심을 품고 피해망상에 젖어있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질투와 시기심이 강했다. 그는 모두를 적으로 여겼으며 특히 그웬 공주에겐 더욱 적개심을 품었다. 그 어떤 일이 공주에게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공주는 자신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갈 인물이 아니었다. 공주는 아버지를 암살한 자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개리스 오빠라면, 더더욱 오빠가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도망칠 수 없었다. 공주는 아버지를 해한 암살자가 잡히기 전까지 아버지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평생 정의를 구호처럼 언급했었다. 그리고 아버지야말로 세상 그 모든 사람들보다 죽음 앞에 정의를 밝힐 자격이 충분했다.
그웬 공주는 고드프리 오빠와 함께 만났던 스태픈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그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공주는 때가 되면 그가 스스로 말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공주는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의 암살자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공주는 마침내 물 밖으로 나와 알몸으로 바위에 올라갔다. 아침 바람에 몸이 떨렸다. 공주는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늘 그래왔든 손을 뻗어 나뭇가지에 걸어둔 수건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수건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공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는 나무 뒤에서 물에 젖은 알몸으로 그 자리에 황당하게 서있었다. 분명 언제나 그래왔듯 같은 자리에 수건을 걸어 두었었다.
당황한 공주는 추위에 떨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순간 공주는 머리 뒤로 인기척을 느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흐릿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뒤에 한 남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찰나의 순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한 순간에 꿈속에서처럼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내가 공주의 뒤에 다가섰다. 그는 공주를 뒤에서 붙들었고 공주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앙상한 손으로 공주의 입을 막았다. 공주는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내는 더욱 가까이 공주를 조여왔고, 공주는 꿈에서 봤던 그대로 칼끝이 붉게 빛나는 단검을 쥐고 있는 그의 모습을 포착했다. 결국 그녀의 꿈은 경고였다.
칼끝이 공주의 목을 겨눴다. 칼끝을 겨눈 손에 굉장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공주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칼 끝에 그대로 목이 베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애를 쓰는 공주의 두 눈가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공주는 스스로에게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 좀 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어야 했다.
“내 얼굴을 알아보겠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가 앞으로 바짝 다가오자 그에게서 뜨겁고 역겨운 구취가 전해졌다. 그의 얼굴을 살핀 공주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본 그 남자였다. 한쪽 눈이 없고 흉터를 지닌 바로 그 남자였다.
“알겠어,” 공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주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알진 못했지만 공주는 그가 집행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층민인 그는 개리스 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어울리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개리스 오빠의 심복이었다. 개리스 오빠는 누구든지 겁을 주거나 고문을 하거나 죽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를 보냈다.
“당신은 내 오빠가 부리는 개야,” 공주가 공격적으로 사내에게 비아냥거렸다.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치아가 몇 개 빠져있었다.
“난 그분의 심복이지,” 사내가 대답했다. “네가 나의 경고를 잊지 않도록 무기를 함께 가지고 왔지.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네가 더 이상 파헤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네가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게 이 경고를 끝내는 동시에 너의 반반한 얼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칼자국이 새겨져 있을 테니 말이다.”
사내는 으르렁 거리며 칼을 높이 들어 공주의 얼굴을 향해 내리 꽂았다.
“안돼!” 공주가 몸서리를 치며 비명을 외쳤다.
공주는 난도질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칼끝이 공주의 얼굴에 닿기 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딘가에서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서 새 한 마리가 사내를 향해 순식간에 하강했다. 공주는 찰나의 순간에 새의 정체를 확인했다:
에스토펠레스였다.
에스토펠레스는 발톱을 세우고 빠르게 날아와 사내의 얼굴을 할퀴었다. 덕분에 사내는 손에서 단검을 놓쳤다.
그웬 공주의 뺨에 단검이 꽂힌 순간이었다. 칼끝이 공주의 뺨을 뚫으려던 순간 칼끝의 방향이 바뀌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단검을 놓쳤고 양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웬 공주는 그 순간 하늘에서 반짝이는 하얀 빛을 목격했다. 나뭇가지 위로 태양이 반짝이며 에스토펠레스가 날아갔다. 그 순간 공주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에스토펠레스를 보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공주는 지체하지 않았다. 공주는 뛰어 올라 상체를 뒤로 젖히고 호신술 스승이 알려준 그대로 맨발로 정확하고도 강력하게 사내의 명치를 가격했다. 사내는 그대로 몸을 구부렸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공주의 가격에 고통스러워 했다. 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반복 훈련을 통해 호신술을 몸에 익혔다. 공격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만큼 힘이 셀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가장 강한 허벅지 근육을 사용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정확히 가격하기만 하면 됐다.
사내가 그대로 서서 웅크리고 있는 그 때 공주는 앞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고 다시 한번 정확하게 조준한 뒤 무릎으로 사내의 코를 가격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코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고 그 바람에 공주의 다리에도 피가 튀었다. 사내는 바닥에 꼬꾸라졌다. 공주는 사내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뒷일을 대비해 사내를 여기서 끝장내야 했다. 단검을 쥐고 그의 심장에 꽂아야 했다.
그러나 공주는 어서 옷을 챙겨 입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가 죽어 마땅하긴 하지만 공주는 자신의 손에 직접 그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공주는 검을 주워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옷을 온 몸에 감아 알몸을 가렸다. 이 곳에서 벗어날 준비를 마치고는 떠나기 전 다시 돌아가 마무리를 지었다. 공주는 있는 힘껏 그의 사타구니를 발로 가격했다.